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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Review/III-2. Exhibition & Event

댄 플래빈, 위대한 빛 Dan Flavin, Light: 1963-1974






나는 구조와 현상을 넘어서서 나의 아이콘에 비움의 마법을 투영시키고자 했다. 

이것이 나의 예술이다. 

- 댄 플래빈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1973년작. '녹색 장벽'(Green Barrier)라고 불리는 작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형광등'의 창작자로 알려진 미국 미니멀리즘 아티스트 댄 플래빈의 전시가 롯데타워 뮤지엄에서 오픈했습니다. 런던 유학 생활 중에 테이트 모던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단순히 형광등 하나만 놓였을 뿐인데 빛 하나로 약간의 울렁임과 함께 하얗고 큰 전시 공간이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인지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그를 미니멀리즘의 대표 조각가sculptor라고 국한해 부르지만, 사실 마르쉘 뒤샹(Marcel Duchamp)의 영향을 받은 댄 플라빈의 작품들은 '무의미함의 의미'에 본질을 두고 있는 다다이즘의 정신을 이어받아 일상생활에 쉽게 접하는 산업사회의 소재이자 기성품을 대변하는 '형광등'을 가지고 오브제와 공간의 상호관계, 그를 보는 관객들이 인지하는 그 자체를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뉴욕에서 전시 설치를 하고 있는 댄 플래빈 circa.1970 [1000things.org]




1933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1953년 미 공군으로 복무하며 1954년 한국 오산 공군에 주둔하면서 기상병으로도 근무한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이 사실 때문에 어느 신문에서는 '한국 품으로 다시 돌아온 댄 플래빈' 이라는 낯간지러운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습니다;;; 오글거림 주의




Blue trees in wind, 1957 by Dan Flavin [www.artandantiquesmag.com]



플래빈은 미술사를 공부하고 작업 초기에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후 60년대 초반부터 사람이 어떤 현상으로 사물을 접할 때 일어나는 '감각', '지각', '인지' 행위에 집중하여 사물의 '현존'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 작가로서 활동하게 되구요. 1961년 뉴욕 저드슨 갤러리 Judson Gallery - Judson Memorial Church 에서 여러 전구를 콜라주 형태로 붙여 만든 부조(浮彫) 형태의 '아이콘들 ICONS'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면서 이후에는 오직 형광등만 사용한 작품만을 제작하게 됩니다. 그 중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부란쿠시에게)'은 그 실험 끝에 나온 작품으로, 이번 롯데뮤지엄의 댄 플라빈 전시의 첫 작품으로 세워졌습니다.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1963




확실히 댄 플래빈의 작품은 어두운 곳에서 관조해야 하는 법이죠. 

다른 작품들보다도 소소한 느낌으로 오롯이 기대있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미니멀리즘 아티스트들의 Quotes mural 


꽤 괜찮은 전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인용구로 인해 댄 플라빈의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전시 후에 관련된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기념이 되는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이...



조금 괜찮다 싶은 quotes는 이미 품절... 4월까지 전시인데 이대로 두진 않겠죠? 








사선의 형광등을 모서리에 수직면으로 밀어 넣는다면 

환한 빛과 이중으로 생기는 그림자에 의해 모서리가 사라질 것이다. _ 댄 플래빈

A piece of wall can be visually disintegrated from the whole into a separate triangle 

by plunging a diagonal of light from edge to edge on the wall; 

that is, side to floor, for instance.

Dan Flavin 








무제 (셜리와 제이슨에게) Untitled *to Shirley and Jason, 1969 





플래빈은 그 후로 계속해서 작품을 모서리에 세우는 작업을 하는데요. 위의 작품, 무제 (셜리와 제이슨에게)에서는 2.4미터 길이의 핑크색 형광등과 그 뒤에 위치한 60센티 길이의 파란색 형광등이 밖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무제 (셜리와 제이슨에게) 중 blue backlight 형광등




그런데 분홍색 백라이트를 가진 작품이 먼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1963년부터 70년까지 댄 플래빈의 코너 설치 작품의 제목은 댄 플래빈의 전시를 진행했던 LA 딜러 어빙 블룸의 아내 셜리의 이름을 따서 '무제(셜리에게)' 였다고 하네요. 그 후 1972년 다른 전시에 이 작품을 설치할 때 1969년에 태어난 셜리의 아들 제이슨의 이름을 넣었다고 합니다. 앞서 있는 '녹색 장벽'의 방과 대조되어 파란색, 분홍색의 불빛이 서로 공명하면서 공간을 뒤덮은 이 환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알고 보니 멋지기도 하면서도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파란색 형광등을 가진 작품이 모서리에 서 있지 않아서 좀 의아하긴 했네요. 세팅 미스인건지...








이번 전시작 중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1973)입니다. 40미터의 거대한 장벽(barrier)의 방인데요. 플래빈이 이토록 애정을 듬뿍 전한 '하이너'는 뉴욕의 컨템포러리 미술을 대표하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 현대미술의 마스터피스를 소장하고 있고 이번 전시의 협력 재단인 뉴욕의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Dia Art Foundation)의 설립자인 하이너 프리드리히를 가리킵니다. 


이 작품 외에도 이번 전시된 거의 모든 작품의 제목을 '무제'로 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한 예술가나 철학자, 후원자들 등의 이름을 가제로 언제나 넣었는데요. 플라빈의 사람 관계를 통해 그의 작품이 완성되고 그 안에 녹아있는 스토리가 무엇일지 계속 상상하게 만들더라구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있어 플라빈은 이런 색을 썼을까. 그들은 어떤 성격이었을까. 여러 물음표를 머리에 얹고 작품을 보았더니 꽤 재미있었습니다. 





초록을 교차하는 초록 (초록이 모자랐던 피에뜨 몬드리안을 위해,

  Greens crossing greens (to Piet Mondrian who lacked green), 1966 [www.christies.com]




이러한 큰 공간을 이용하여 실현시킨  전체 규모의 플라빈의 처음 설치 작품은 1966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Van Abbemuseum에서 설치한 초록을 교차하는 초록 (초록이 모자랐던 피에뜨 몬드리안을 위해) 인데요. 추상주의의 대가인 몬드리안이 자신의 추상화 작품에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은 쓰지만, 초록색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몬드리안의 콤포지션Composition 시리즈 [tes.com]



파랑, 빨강 그리고 파랑의 인공 장벽, 플라빈 스타벅 쥬드에게 

(an artificial barrier of blue, red, and blue (to Flavin Starbuck Judd) , 1968 [guggenheim.org]




그로부터 2년 후 플라빈은 1968년 작 파랑, 빨강 그리고 파랑의 인공 장벽, 플라빈 스타벅 쥬드에게 (an artificial barrier of blue, red, and blue (to Flavin Starbuck Judd)를 시작으로 장벽 연작을 했던 것 같아요. 앞 작품들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그린 장벽 Green Barrier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유러피안 커플 European Couple, 1966-71




댄 플래빈은 모서리나 중요 접합 부분에 형광등을 구조적으로 배치하게 되면 빛의 환영을 통해 실제 공간을 해체하고 유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빛과 건축의 상호작용을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색의 형광등으로 표현해내는데요. 댄 플래빈과 당시 친분이 있는 실제 사람들의 이름으로 제목을 채운 유러피안 커플 방을 들어서는 순간, 앞서 녹색 장벽의 방에서 막 벗어난 후의 적응 현상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마치 이곳에서의 느낌은 시공간을 잠시 초월한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전시를 보던 차에 이번 2018 트렌드 컬러를 살짝 발견하는 숨은 재미도^^ 









빛은 그 자체로 그대로의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댄 플래빈












댄 플래빈은 작업 초기에 직선의 조명만을 이용했는데 하나로 오롯이, 아니면 여러 개의 형광등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빛에 의해 공간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환영을 만들어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Untitled, to a man, George McGovern, 1972




하지만 1972년 그의 작업에 원형 조명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의 조명 작업의 형태에 10년 만에 변화를 주는 데 성공했다고 하네요. 포스팅하면서 검색해보니 이 초기 작품 또한 디아 파운데이션 DIA Art Foundation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은 게 매우 애석하네요 ㅠㅠ










꿈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의 세계는 동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마음썼던 감정들이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집착하던 감정들은 죽음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지고 말것이다.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2017







쉽게 구할 수 있는 형광등을 특정 한 공간에 설치해 그 빛을 통해, 오브제 자체와 공간, 관람객의 인지 간의 관계, 유기적 상호작용하는 그 자체를 예술로 표현한 댄 플래빈의 작품을 보고 나오며 꿈을 꾸다 현실 세계에 안착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생성과 진화, 다시 흩어지고 사라지는 인간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하얀 눈발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이날 1시간 이상의 면접을 보고 나서 댄 플래빈 전시를 보았더랍니다. 가고 싶은 곳인데 안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댄 플래빈의 작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들더군요. 

이것저것 집착하고 걱정하며 많은 마음을 쓰는 이 현실은 어쩌면 꿈같은 소멸 앞에서 초라한 흔적일 수 있다고 되새기며 다독이는. 개인적으로는 꿈같은 명상을 하고 온 것 같았어요. 여러분도 댄 플라빈의 작품들을 통해 인생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영감 가득한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